
[Bliss & Jakie]
엄마 제자 분이 초대해주셔서 보러간 현대발레. 현대발레극은 처음이었다. 어째 요즘은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서(무려! 내가! 미술관도 잘 안감...!! 이게 말이 되나?ㅋㅋㅋ) 몰입이 될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너무 좋은 감상이 남아 굳이 글로 옮겨본다.
이제껏 관람한 발레극들은 클래식 발레인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코펠리아 그리고 낭만 발레인 오네긴 정도 밖에 없다. 갈라쇼는 몇 번 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스토리로 이어져서 흘러가는 극들은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컨템포러리 발레는 기존에 봐왔던 발레극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창작된 시기가 가까워서 그런지 더 친숙한 이해로 다가온다고 해야 하나? 안무가의 의도와 무용수들이 기존 클래식 발레극보다 더 현재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1막 : Bliss
이 발레극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무한 채로 관람을 시작했어서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극이었다. 인터미션 때 구매한 책자를 보고서 별빛을 수놓은 듯한 무대 디자인과 이 무용극의 발랄한 의도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극은 두 남자무용수들이 무대 중앙으로 뛰어 들며 시작한다. 경쾌한 재즈가 흐르며 다른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서로를 경유하고 마주치며 함께 흐름을 만들어가다가도 사라진다. 그러나 또 다시 무대로 뛰어들어와 흐름을 만들어 간다. 춤추는 것이 즐겁다는 듯이 무대를 횡단하고 뛰어다닌다. 어떻게 보면 삶을 살아가며 이어지는 인연의 흐름으로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저마다의 관계를 춤으로 만들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연인 같기도 한 페어가 만드는 흐름, 우정을 그리는 듯한 그룹의 춤사위. 모든 것은 순수하게 춤의 즐거움 위에서 이어지는 관계의 이야기로 보였다. 정말 즐거워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무용수들의 기쁨이 느껴졌다.

인터미션 때 책자를 사서 보니, 내가 느낀 점이 창작의도였다는 걸 보고 내가 또 현대예술을 이해해버렸군 하며 안도이자 자만이 삐쭉삐쭉 솟았다.ㅋㅋㅋㅋ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이 첫번째 극을 보면서, 엄마 제자인 언니가 기쁘다는 표정을 한아름 안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예술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멋져서... 나는 끈기없이 이런 저런 핑계들로 인해 나의 예술을 꺼내놓을 기회들을 흘려보내왔는데, 이 언니는 자기만의 흐름을 엮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많이 부럽고도 멋져보였다.
2막 : Jakie
인터미션 때 산 책자를 보고 이 발레극은 사전정보를 어느 정도 인지한 채로 관람을 했다. 근데 대충 훑어보는 수준으로 읽어서 '테크노 음악'와 '강렬한'이라는 단어들만 눈에 들어왔어서 재미있겠거니 생각했다. 오우... 근데 시작하자마자 살색톤의 레오타드를 입은 여자무용수들과 남자 무용수들의 무리가 무대에 채워지니, 이게 뭐지? 싶어지는 것이었다. 음악도 처음엔 느릿한 곡조의 발레음악에서 점차 테크노로 나아가는 거라 처음엔 정말 당황스럽긴 했다. 거기다가 아까 잠깐 훑어보다 스쳐지나간 Jakie 안무가의 인터뷰가 불켜듯 떠올랐다. 무용수가 편안한 걸 보기 싫다나. 그래서 무용수들은 극 내내 움직임을 제한당한다. 이 제한이란 테크노 비트에 맞춰 몇초당 제한이 반복되는 걸 말한다. 관람자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켜 몰입을 유도하는 느낌. 처음엔 이게 뭐야 하던 의상들과 춤사위가 극 중반쯤 가면 이것 말고는 이 극을 극대화할 방법은 없구나, 무용과 음악, 의상과 극의 분위기가 삼합처럼 조화롭고 무엇 하나 뺼 수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걸 느꼈다. 근데 의상도 의상이니만큼 커튼콜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극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제한하기에 첫번째 극인 Bliss와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왜 두 작품을 동시에 상영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
+)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현대예술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밖에서는 한없이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기독교 집회가 울려퍼지는 걸 들으며 또 하나의 대비감을 느꼈다. ㅋ